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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공부와 정책, 시장원리의 관계 [프랑스 우유 반값 정책의 실패]

by 돈이Money? 2023. 3. 1.

프랑스 우유반값 정책의 실패로 보는 시장경제원리



우리나라 정치권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편이지만, 하나 확실한 점은 거시적 경제 정책은 결국은 시장경제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시민들이 시장경제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가 왜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한 국가의 대표자와 대표들이 어째서 경제에 대해 무지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일화와 개인적 관점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이를 과거 프랑스 대혁명 성공 후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혁명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의 우유값 세금 정책의 일화로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혁명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가 17세가 되던 때의 일이다.



이제 막 새로운 왕이 된 루이 16세가 루이르그랑을 방문하자, 로베스피에르는 루이르그랑 학원 생도 대표로 환영사를 했다. 당시 생도 대표로 나온 로베스피에르는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였을까?

 

 

그러나 이 소년이 장차 왕의 목숨을 빼앗는 주역이 되리라고는 루이 16세도 로베스피에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 그가 독재공포정치의 주역이 되어 단두대에 의해 형량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지도..


루이 16세는 그리 뛰어난 군주의 면모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폭군도 아니었다고 한다. 온화하고 성품이 선량하여 그가 즉위되었을 때는 많은 기대를 모았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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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둘러싼 여러 추문, 계목사상가들에 심취한 지식인들과 부르주아 계급층의 불만, 거기에 더해 프랑스의 경제난, 식량 가격의 폭등은 도시 서민과 지방 농민들의 저항 의식으로 번지며 찬란한 유럽권 프랑스 왕조도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속적인 식량난으로 인해 폭동은 아주 거칠며 자주 일어났고 이에 루이 16세는 비밀리에 외국으로 망명하려다 붙들리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급진파의 목소리가 높아였고 왕정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의 당파 싸움으로까지 번졌으며, 이는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몸담고 있던 자코뱅 당에서 루이 16세 처형을 촉구하는 여론이 일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로베스피에르'가 있었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촉구하며 꺼낸 말이다. 1793년 1월 19일 재판을 끝낸 이틀 뒤, 단두대에 루이 16세는 처형당했다.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 대혁명을 성공한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 인들은 부패한 왕과 귀족을 몰아내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전쟁과 유래 없는 물가 폭등의 혼란은 오히려 왕정시기가 그리워질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만민의 자유, 평등의 실현과 불평등을 유발하는 모든 정치 제도, 구습에 대한 영원한 추방을 말하던 루소의 평등주의 이상을 추구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숙청하며 공포공치를 펼쳤다.


거기에 왕권을 몰아내고 올라선 혁명정부의 부패와 무능함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왕정의 시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고 이때 나선 이도 바로 로베스피에르였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생필품들의 가격이 너무 올라 시민들의 불평이 커진 것을 이용했다.


1. 우유 값, 단두대의 최고가

 

 

그는 강제로 우유 가격을 절반으로 내려 우유의 '최고가'라는 것을 정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유값의 최고가를 지키지 않는 업자는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강경 정책'을 마련했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조금의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안다면 추후에 있을 일들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강제로 정한 우유값의 최고가는 당시에 젖소 사료값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우유의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당시의 낙농업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우유를 팔면 더욱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정책 앞에서 좌절하며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젖소를 도살하고 고기와 가죽을 팔기 시작한다.


우유가 필요한 수요자들은 넘쳐나는데, 우유 공급자들이 우유를 공급할 수가 없고, 우유의 생산 단가가 떨어졌으니 우유의 생산량은 계속 줄어들며 아무도 우유를 생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니 아무리 '단두대의 최고가'를 근거로 막아본들 우유가 필요한 수요를 막을 수도 없고 끊어진 공급은 피할길이 없었다. 그로인해 우유 값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이때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가격 조절의 첫 번째 세금 정책을 실패하게 된다.

 

 

2. 두 번째 세금 정책의 실패 

 


로베스피에르는 치솟는 우유 값이 젖소의 사료값 도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이번에는 우유값을 내리기 위해 젖소의 사료값을 절반으로 내려버린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젖소 사료인 건초종사자들 또한 사료값을 반값으로 팔 바에야 사료 생산을 중단하는 결론에 도달했고 건초들을 태우는 지경에 이른다.


당연히 젖소의 사료값도 3~4배로 오르며 우유값은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올라버렸고 더 이상 우유는 농민들의 소유가 아니게 되었다.


결론은 로베스피에르는 도덕적이고 청렴결백하게 지극히 선한 의도로서 정책을 펼치려 한 것일지 모르지만, 시장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불행을 자초했다.


결국은 제대로 된 관료직을 해본 적 없던 로베스피에르와 관료들이 프랑스혁명정부의 혼란을 스스로 자초했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 우유 가격 최고가가 불러온 최후

 

 

우유값의 폭등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10배가 넘게 폭등한 우유값은 전반적인 생필품의 가격마저 폭증시켰다.


이것은 결국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빈민들의 불만은 애초보다 더 커졌을 것이다. 또는 법률가였던 로베스피에르는 직업의 특성과 그의 인품상 루소의 평등주의 이상을 극단적으로 추구했을지 모른다.


그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였고 도덕적이며 부패한 정치가의 면모는 아니었으나, 경제에 대해 너무 문외한이었고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치로 인해 허울뿐인 공포정치로 프랑스를 안정시키려 했고 이는 실패했다.


공포정치의 주역들은 자신들이 수립한 방식 그대로 재판을 받았다. 사실 관계 조사도 없었고, 변론의 기회도 없었다. 그들의 죄를 고발한 검사 역시 공포정치 내내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온 푸키에 당빌이었다.


결국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로베스피에르는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과 자신을 따르던 이들이 이념에 반하는 이들을 희생시켰던 도구인 단두대에 올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과연 잘못된 정책만이 문제였을까?



진정 순수한 인간이, 아무런 사리사욕이 없이 스스로를 정의라고 믿는 일을 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일화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우유 가격의 안정화를 위해 단두대로 향할 수도 있었던 당시의 서민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반대가 되어버린 로베스피에르와 관료들이 단두대에 올라갈 때,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이 잔혹한 이야기의 시작은 정치적 문제로 묘사되고 있는 반값 우유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로베스피에라의 “모든 프랑스 아이는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우유 가격을 내리도록 한 것으로 인해 당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서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에서 시작된다.

 

 

법률가 로베스피에르는 분명 당시 민중을 위해 악의적 접근보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정책을 펼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이 지지층을 얻으려는 의도로써 작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생각보다 유명한 일화다.

 

 

이 일화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의 과도한 부동산 정책 개입이나 시장경제의 순기능 역할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묘사되고 있기도 한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정책 개입이 너무 과도하게 작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본적인 경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정부의 과도한 경제적 개입이 얼마나 시장경제에 파국으로 닿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시선으로만 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조건적으로 우유의 가격만을 내리면 모든 경제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경제적 무지'와도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국가의 책임자와 그에 관련된 모든 대표자들이 과도한 경제적 정책 개입과 시장경제의 자율적인 가격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하는 의미를 담은 일화임에는 부정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항상 국가의 경제적 실패의 방향을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정치적 실패에서 찾는 것만이 문제에 해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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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한 것은 프랑스의 시민들이다. 로베스피에르 그가 내놓은 정치적 목적성의 결과물은 이처럼 경제에 대한 서민들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 좋지 못했던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물가를 안정시키고, 아이들이 우유를 양껏 먹을 수 있게 해 줄 시대적 영웅을 원했을 시기였겠지만, 결국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이러한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정책 개입의 문제점은 이제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역사적 배경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과거를 이정표 삼아 재발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정부에 잘못된 정책에만 탓을 돌리려 하는가? 이것은 우리의 삶과 경제에 대한 시민 의식에 문제 이기도 하다.

 

 

왜 서민들은 항상 가난해야 하는가? 왜 경제에 대해 무지해야만 하며, 잘못된 경제적 방향성을 국가에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가?

 

 

예를들어 우리나라는 '기득권'이란 의미가 어느 센가 이상하게 와전되어 있다. 애초에 기득권이란 개인이나 국가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득권 세력은 어느새 권력이나 돈을 가진 특수한 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라의 대의명분처럼 누군가 들어도 혹 할만한 정책 사안들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시장 경제가 좋지 않고 현재 한국의 상황처럼 빠르게 GDP가 성장한, 그러다 성장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지리적 이점 또한 가지지 못한 작은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유독 부자가 많고 똑똑한 과거 유대인들의 경제에 대한 교육 방식이나 초강대국이 될 수 있던 미국의 과학 기술과 지식, 발전의 대물림, 하다 못해 수많은 경제 인력과 윗세대를 받쳐줄 중국의 인구로 인한 생산동력 등 수 많은 성공의 역사를 배우고 세계 어느나라보다 훌륭한 교육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어느 것 하나 좋은 점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기초 과학에 관심이 없다. 경제에 대한 지식의 대물림 대신 권력에 대한 집착만 있을 뿐이고, 그로 인해 똑똑한 상위권 지식인들은 법대, 의대와 같이 돈이 되고 권력이 대물림하기 좋은 직업만을 찾아간다.

 

 

서민들 조차 본인은 경제나 기술발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 당장 나의 지식을 키워 자녀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단, 무조건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각인시키며 자녀들이 원치도 않는 사교육을 강요만 한다.

 

 

저출산 문제, 너무 높아져버린 부동산, 점점 벌어지는 자산의 차이, 남녀 간의 성평등에 대한 분열 등 최근에 한국을 뒤덮은 안 좋은 사회적 현상들이 젊은 세대를 옥죄어 온다. 정말 주관적인 의견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에 바람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누군가 갖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시장에서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기득권', 그것은 자본주의에 냉정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한국에서 더 심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고 있는 이상한 현실에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사회는 지금껏 자녀가 똑똑하면 법대, 의대, 공무원을 하라고 강요했다.

 

 

모든 부의 출처가 소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현재 잘사는 나라들처럼 경제, 돈에대해 공부시키려 하지않는다.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은 돈을 쫒는 것이 어느덧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 불행하다고 부르짖는가? 이제껏 권력과 부를 위한 공부만을 강요하던 세대가 아니었던가? 그때는 그것이 맞는 방법인 줄 알았다는 것은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사회 모습을 보면 공부만 열심히 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무색해진지 오래다.

 

 

요즘 2040들을 보자.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책 한 권'을 내 돈으로 샀다면, 그것은 '책에 대한 기득권을 얻은 것'이다.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가 언제부터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가 '기득권'을 안 좋게 바라보게 된 원인이 되는 것인가?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고 돈이 많으면 이상하게도 안 좋은 쪽으로 자꾸만 몰아간다. 돈이 많으면 사기꾼이 되고, 경매로 집을 사면 오갈 때 없는 사람을 내 쫒았다며 손가락질한다.

 

 

부동산에 투기를 하면 투기꾼이라 몰아가고 주식으로 부자가 되면 단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노력은 쉽사리 부정당하며,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어느 정도 들어왔다고 하면서도 저성장에 대한 장벽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부모세대와 같이 "공부해라, 공부 만이 네가 살길이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젊은 세대를 닦달하면 뭐 하겠는가? 이제껏 나의 삶에 방식도 자녀와 곧 다르지 않았음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우리가 젊은 시절 주위에 '내가 부모가 되면 그러지 않겠다던 젊었을 때의 강단'도 희미해져 버린 듯하다.

 

 

이게 우리 세대에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공부법이다. 혁신적인 교육이 변화가 필요하다. 이래도 정말 모든 것이 기득권에 대한 잘못에서만 나왔을까? 

 

 

정책적인 문제로 인해 한계가 있다면, 그전에 그것이 어떠한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세대의 부모들조차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우유 반값 정책의 이야기를 다루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글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기에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라웠다.

 

 

내 생각과 다른 이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태지만, 이제는 우리가 실패하는 근본적 이유를 국가에 찾기 이전에 지지층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깜짝 퍼주기식 정책들이 왜 나오고 있고, 어째서 실패할 정책들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지, 어째서 선거일마다 특히나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일화이지 않을까 싶다.

 

 

계속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의 국회에 제대로 된 투표가 필요하다.

 

 

외세에 내세울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은 그들이 할 일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제는 내수시장을 다지고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이나, 또는 기술에 대한 빠른 발전 행보를 바탕으로 하여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등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어째서 자유에 대한 민족 사상을 버리고 한국식의 말도 안되는 갖가지 K - 규제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서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심화되기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왕권에서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아니다.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에게 지나친 규제는 사치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지나치게 규제를 가할 정도로 잘살고 있지 않다. 경제가 커나가려면 어느정도 자연적인 시장경제의 순환이 필요하고 그로인한 화폐의 돌고도는 흐름이 생겨야 기업과 개인이 크고 자연적인 투자가 이어지며 발전한다.

 

 

투표권은 모든 국민에게 있고 기득권도 일반 시민들도 함께 경제적 문제에 대해 헤쳐나갈 필요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다음 정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경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좌파니 우파니 싸우는 것도 적당히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국가의 살림, 재정, 정치, 안보 등 국가와 기업 또 서민의 모든 것은 경제와 연결된다. 이제는 결국 행복한 서민의 삶을 위해서는 경제에 대해 진심인 사람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출처: https://qlehfl0321.tistory.com/ [돈이 money? 의 돈 공부 거기에 일상까지 한 스푼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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